커피, 플리머스항구 보스턴차사건, 독립전쟁,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 홀
커피, 플리머스항구 보스턴차사건, 독립전쟁,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 홀
보스턴 플리머스 항구 (Plymouth)
보스턴 플리머스 항구 (Plymouth)
보스턴 항구 남쪽의 포구인 플리머스는 미 신대륙에 도착한 사람들이 최초로 발을 내디뎠던 지역으로 ‘플리머스 락’ 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되어 바위는 ‘1620’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청교도 순례자들이 이곳에 상륙할 때 처음 밟은 바위란 의미를 담고 있다. 바닷가에는 영국 청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타고 왔던 메이플라워호가 복원되어 정박되어있다.
‘플리머스 락’ 1620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
17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 처음으로 차가 판매된 후 궁정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차는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후 중국으로부터 직접 차가 들어오기 시작한 18세기에는 그 수요가 점차 증대되어갔다. 이시기에 영국 차의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토머스 트와이닝 (Thomas Twining) 이다. 그는 1701년 런던의 동인도회사의 상인 밑에서 일하다가 1706년 ‘톰의 커피하우스’를 열었고 고객은 다양하게도 상류계급은 물론 학생, 변호사, 성직자등 모여들어 커피, 차를 함께하며 토론을 즐겼다. 이와 더불어 영국정부는 세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차 보급에 적극적 정책을 운영하여 홍차의 판매 비율은 늘어났고, 더불어 영국인의 해외 진출과 함께 홍차도 세계각지에 전파됐었다. 그러나 이시기에 트와이닝사는 (3대 사장 리처드 트와이닝) 날로 과중하게 부과 대는 세금을 감당하기 힘들어 감세를 주장하고 있었던 상황에 결국 차에 대한 세금 불만의 표출된 사건이 신 대륙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보스턴 차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결국 신대륙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보스턴차 사건
보스턴차사건 (Boston Tea Party)
신대륙에서 처음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뉴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한 네덜란드계 이주민들에 의해서다. 1664년 영국이 이 땅을 빼앗아 도시 이름을 뉴욕으로 바꿨고 이때부터 홍차는 미국 상류사회에 친근한 음료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18세기 후반의 영국과 마찬가지로 신대륙 미국도 차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그리하여 미국에서는 동인도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중국에서 차를
밀수입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영국의회는 1773년에 동인도회사를 구제하기 위해 미국에 차를 팔 때 동인도회사에 독점적인 판매권을 부여하고 관세를 없애 밀수업자들보다 싼 가격에 차를 판매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차 조령’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 내 차 밀수입업자들을 자극하게 되고 결국 이에 대항하여 미국에서는 차 상인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1773년 12월, 미국 이주민들의 반대 집회를 무시하체 차를 실은 동인도회사의 배 세척이 보스턴 항에 입항하자 새뮤얼 애덤스가 거느리는 50명의 주민들은 아메리카 인디안으로 변장하고 배에
뛰어올라, 342상자의 차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것이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 (Boston Tea Party) 이다. 이에 즉각 영국은 변상을 요구하며 보스턴에 군대를 주둔하지만 미국은 1774년 대륙회의를 열어 영국에 대항하게 되고, 이는 마침내 1775년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independence-hall-독립 기념관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 홀
미동부여행,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울려 펴진 도시, 필라델피아,
제퍼슨이 미국의 독립선언을 발표한 엄청난 역사적 장소, 조지 워싱턴의 혁명군 총사령관 임명이나, 성조기의 맹세, 그리고 미국 헌법의 초안 작성 등 미국 역사의 중추적인 사건들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필라델피아 관광의 시작은 인디펜던스 비지터 센터에서 시작, 필리델피아 주요 관광지의 정보도 얻을 수 미국 독립에 관련된 기록 영화도 볼 수 있다. 미 독립에 관한 자료가 가득하고 각종 투어 예약도 가능, 자유의 종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종이자 필라델피아 관광의 하이라이트로 미국의 노예 제도 폐지를 이끌어냈고, 미국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마다 타종되었으며 남북전쟁 당시엔 미국전역을 순회하기도 하면서 미국의 애국적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필라델피아 영구 전시 중인 '자유의 종'
시민들에게 최초로 독립 선언문이 낭독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1776년 7월 8일에도 종이 울렸다. 자유의 종은 1846년 균열이 생긴 뒤엔 필라델피아로 옮겨져 영구 전시중이다.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 인간의 꿈이 인간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라면 카페는 그 동력을 만드는 현장이다.”
뉴욕 월스트리트 전미커피협회
보스턴 차사건 이후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애국적 행동으로 비춰졌고 차를 마시는 것은 미국인답지 못한 짓으로 여겨져 커피의 존재는 신세계에서 그 어떤 음료도 넘볼 수 없는 지위에 올랐다. 일례로 1789년 새로 대통령으로 선출된 조지 워싱턴이 뉴욕에 왔을 때 뉴욕 주지사와 시장이 주최한 환영행사가 열린 곳이 그 당시 뉴욕을 대표하는 ‘머천츠 커피하우스’ 였다. ‘머천츠 커피하우스’는 오늘날 월스트리트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 전미커피협회 (National Coffee Association) 본부가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1607년 영국 존 스미스 선장이 미국에 커피를 처음 가져온 후 미국 본토에서는 커피를 재배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후에 미국령 하와이섬에서 코나커피가 생산되기는 하지만 본토에서는 북미 기후 조건의 영향으로 커피나무가 자라지 못했다. 1773년 영국 정부가 홍차에 높은 관세를 부여하는 정책에 반하여 ‘보스턴 차사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즐기던 음료가 홍차에서 커피로 변화하게 된다. 이후 커피를 둘러싼 영미간의 전쟁은 끝난 적이 없는데 최근 일련의 논쟁 중 일부를 소개하면 미국에서는 ‘ 커피를 아무리 많이 마셔도 심장병과의 관련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발표하자. 영국에서는 ‘그렇게 많이 마시면 심장병에 걸린다.’고 반론을 펴기도 하였다. 지금도 영 ㆍ미간의 홍차와 커피 갈등은 이어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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