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과학을 선도한 독일, 현명한 주부들이 만든 베를린 '커피가든' 문화
커피과학을 선도한 독일, 현명한 주부들이 만든 베를린 '커피가든' 문화
potsdam-포츠담궁과 공원, 베를린
독일 여인 ‘손탁’
우리나라 커피문화 도입 시기 이야기를 하다보면 독일 여인 ‘손탁’이라는 이름이 거론된다. 이와 더불어 여성 바리스타 하면 생각나는 나라가 독일이다. 1890년대 까지도 베를린에는 갖가지 종류의 크고 작은 식당, 맥주 바, 와인 가게로 넘쳐났지만, 커피하우스는 많지 않았다. 이때까지는 베를린의 도시생활에 커피가 두드러진 자취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hamburg-함부르크 슈파이셔슈타트 건축물
음악적으로는 멘델스존과 브람스의 탄생지기 도한 함부르크는 가장 독일다운 최대의 독일 무역항이자, 베를린에 이은 독일 제2의 중심의 도시이다. 독일의 항구 도시인 함부르크에는 대규모의 창고 단지와 표현주의 건축양식 콘토어하우스 건물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함부르크 항구를 근거로 흥미로운 물류 통계가 있다. 1841년에 물류항구이던 함부르크에는 36,000톤의 커피를 수입했지만, 홍차는 단지 137톤에 불과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대 독일문학계를 풍미하던 음료는 커피가 아니라 차였음을 감안하면, 누가 그처럼 많은 커피를 소비 하였나? 답은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아침에 집안일을 모두 마치고 함께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한 장소로 모였다. 그들은 케이크를 곁들여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며 바느질을 하였다.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커피와 다과를 나누며 담소를 즐겼던 여성들의 사교모임을 카페크렌첸 (Kaffeekranzchen) 한다. 이 무렵 남성들에 의해 생겨난 두 가지 새로운 용어가 오늘날까지도 통용되고 있는데, 카페클라치 (Kaffeeklatsch) 와 카페슈베스터 (Kaffeeschwester) 가 그것으로 전자는 커피 파티에서 여자들이 이야기하는 가십이나 스캔들을 의미하며, 후자는 가십이나 스캔들을 좋아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의 표현이다.
베를린 커피가든
베를린 공원
독일에서 커피는 남성에 의해 '여자의 음료'로 간주되어 '남성'이 커피를 준비한다는 발상은 독일 베를린 시민에게는 우스운 노릇으로 간주되어 맥주제조와 달리 커피를 만드는 것은 여성적인 일로 간주되었다. 그러던 중 여성들의 가정에서 음용되던 커피가 최초로 공공장소에서 음용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그 곳은 바로 콘디토라이 (Konditorei)라고 칭하는 일종의 제과점이었다.
베를린 여성들이 최초로 형성되기 시작한 문화로 중산층 독일 여성들은 제과점만은 남성들과 다름없이 자유롭게 출입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초창기 커피하우스는 남성들의 공간) 여성이 우위를 점하고 있던 제과점에서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아주 달콤한 케이크와 묽은 커피가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 차츰 커피문화는 변모하여 베를린에서는 현명한 가정주부들이 휴가비용을 절약하기 위하여 근교에 간소한 저녁식사를 찾기 시작하면서 소박한 테이블과 의자만을 가지고 식사와 맥주대신 커피를 즐기는 문화로 발전되었으며, 도시는 곧 커피가든 으로 만들어져, 당시에 "가족 여러분, 여기서 커피를 만들어 드세요!" 라는 푯말이 내걸리기도 했는데, 이런 간판은 지금도 베를린 외곽에 남아 있다고 한다. 커피문화 최초에는 여성을 차별하였지만 독일여성은 커피 문화를 발전시켜 커피향기 가득한 멋진 저녁의 베를린을 만들어 나갔다.
멜리타 벤츠여사
독일 가정주부가 발명한 최초 핸드드립기구 멜리타 드리퍼,
다른 유럽나라에 비하여 커피가 독일가정에 파고들어 맥주를 대신하게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전에도 언급하였듯 소위 '게르만적이지 않는 것' 은 쉽사리 믿지 않는 독일 인들의 성향, 자기 땅에서 빚은 독일맥주에 대한 뿌리 깊은 애착, 그리고 조금 더 첨가하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유독 독일의 권력층이 커피 확산을 경계한 이유는 독일이 열대지방에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 한 요인도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이미 대중의 일상을 깊이 잠식한 커피를 막을 길이 없었고, 오히려 정확하고 세밀함을 추구하는 국민성을 근간하여 발달된 과학이론과 응용능력으로 여러 가지 커피관련 산업에서 발전을 선도하기 시작하는데
1908년 독일의 한 가정주부인 멜리타 벤츠 여사가 매일 아침 남편을 위해 커피를 만들기 위해 처음 만들어진 커피도구로 당시 독일의 커피는 터키쉬 커피 추출방식으로 팬에 커피 가루를 끓여 가라앉힌 후 상부의 커피만을 따라 마시는 방식이었는데 이때 컵에 커피를 따를 때 커피가루가 컵에 따라 올라와 커피를 마시는데 불편함을 느낀 멜리타 벤츠 여사는 커피찌꺼기가 생기지 않는 방법을 창안하게 된다. 멜리타는 놋그릇 바닥에 구멍을 뚫고 아들의 노트 한 귀퉁이를 찢어 압지를 깔아 커피를 걸러내 쓴맛과 찌꺼기를 제거한 부드러운 커피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여과지를 이용한 최초의 멜리타 드리퍼 이다. 이 드리퍼를 특허로 등록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멜리타'라는 회사를 창립 생산하게 된다. 현재까지 핸드드립을 대표하는 회사로 140개국으로 커피관련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으로 성장 운영되고 있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들리프 룽게’ 가 디카페인커피,
즉 카페인 제거기술을 최초로 개발하였다. 카페인프리 커피 (Caffeine Free Coffee) 카페인(caffeine)은 원래 커피(coffee)라는 용어에서 왔다. 카페인은 1819년 독일 화학자 프리들리프 페르디난트 룽게가 처음으로 커피에 함유된 성분을 발견한 데 이어 프랑스 피에르 로비케 등 화학자들이 1821년 커피에서 카페인이라는 정제(精製) 요소를 확인했다고 문서로 공식화하면서 고유명사화 되었다. 그리고 그 커피 카페인을 빼낸 커피를 카페인 프리 커피(Caffeine Free Coffee)라고도 한다. 1910년생 커피 속의 카페인(약 97%)을 제거한 커피가 만들어졌다. 카페인은 수용성 물질이지만 커피콩의 내심부에 있으며 그 바깥쪽에 단단한 셀룰로오스 벽이 있다. 그래서 생두 (Green bean) 커피를 쪄서 부피를 크게 하여 카페인의 가수 분해를 촉진시켜 제거한다. 이렇게 처리한 생두 (Green bean) 를 로스팅
한 후 에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추출한다. 디 카페인 커피는 카페인에 의한 생리작용 (불면, 심장, 위장 등에 영향)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열풍식 커피 로스팅 기계 개발
커피를 볶는 원통형 기계를 처음 개발 커피를 드럼통속에 넣어 열을가한 바람을 이용하여 커피를 볶으니, 기존의 직화 방식 보다 빠르면서도 고르게 볶인 커피가 나오게 되어 커피의 좋은 쓴맛과 상큼한 신맛, 단맛의 여운이 지속되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 로스팅 기술 발전의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와 같이 독일은 2차 대전 이후 커피가 부흥과 재건의 심볼로 자리 매김하며, 카페인 프리 커피 (Caffeine Free Coffee), 열풍식 로스팅기계, 핸드드립 기구 개발 등으로 전 세계 커피 시장을 선도하는 나라로 오늘날 전 세계에서 커피를 많이 소비하는 상위층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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