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주향 가득한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섬, 집으로가는길,조세핀 그리고 커피
럼주 향 가득한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섬, 영화 “집으로가는길” , 고갱, 조세핀 그리고 커피
martinique 마르티니크,일몰
중남미여행, 라틴아메리카 커피역사가 시작되는 섬
1713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암스테르담 시장으로부터 유트레히트 조약 체결 기념으로 선물 받은 커피 묘목을 파리왕립식물원에서 관리하게 하였다.
1723년, 커피 역사에 기록될만한 서인도 제도의 마르티니크 섬 (Martinique Island)에도 커피나무가 심어졌다. 그 주인공은 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마르티니크섬의 젊은 해군장교 가브리엘 드 끌리외(Gabriel Mathieu de Clieu)였다. 당시 파리에 휴가차 머물고 있던 그는 커피나무를 알게 되고 커피나무를 이식할 방법을 알아보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서, 한밤중에 루이14세의 식물원정원 벽을 넘어 온실에 잠입 어린 커피나무를 가지고 나온 후 끌리외는 그의 근무지 그마르티니크로 떠난다.
마르티니크 선셋 카리브 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은 아니다. 그 여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아, 대서양을 건너는 도중에 해적들을 만나 배가 나포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폭풍우 속에서 커피 묘목과 함께 가라앉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오랜 시간의 항해는 마실 물이 거의 다 떨어져 배급제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끌리외’는 그가 배급 받은 물의 절반을 커피나무에 쏟아 부어야만 했던 경우도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신대륙 ‘마르티니크섬’ 우리에게는 엔틸레스 제도 쿠바 근처에 있는 프랑스령 작은 섬으로 화가 폴 고갱의 태양에 대한 열망 작품 활동지역과 최근 우리나라 영화 ‘집으로 가는 길’ 감옥이 있는 곳의 배경이 되었던 섬으로 알려져 있는 섬이다.
가브리엘 마티유 드 클리외와 마르티니크섬에 가져온 첫 번째 커피나무
도착한 그는 프레체어 지역에 가시덤블 울타리를 만들고 커피나무를 정성스럽게 길렀고, 그 결과 1726년 첫 수확에 성공한다. 프랑스는 커피나무를 훔쳤던 그를 용서하고 1918년 미르티니크에 기념비를 세우고 그의 공로를 기념 하였다.
이곳에서 자란 커피나무는 훗날 인근 프랑스령 기아나로 이식되어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 당시 기아나 는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서로 절반씩 점령하고 있던 나라로 영토분쟁이 이었고, 영토분쟁의 해결사로 뛰어든 브라질 출신 중령 프란시스코 드 멜로 팔헤타 ( Fraancisco de Mello Palheta )는 지역에 머물던 중 커피나무를 발견하고 커피나무의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1727년 기아나 총독 부인에게 커피 묘목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키가 크고 잘생겼던 장교에게 빠져든 총독부인은 꽃다발 속에 커피 묘목을 숨겨 선물하게 되고, 그 묘목이 콜롬비아에 뿌리를 내리고, 이어 브라질로 퍼져 나가 50년 만에 약 1,900만 그루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 묘목들이 바로 세계 커피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라틴아메리카 커피역사의 시초가 된다.
중남미여행, 럼주 향 가득한 마르티니크섬!
마르티니크 martinique, 럼 공장
1502년 콜롬버스가 처음발견 한 후 1635년 프랑스식민지가 된 섬으로 인구는 약 40만명 이다. 1902년 화산폭발 대참사가 벌어져 주민 3명만 생존하는 대 참사가 있기도 하였던 섬은 현재 주로 설탕과 바나나를 생산하는 섬으로 서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온 흑인들이 현재 주민의 대부분을 구성 한다.
마르티니크섬 가는 방법 서울에서 파리를 (11시간) 경유하여 마르티니크로 (파리에서 마르티니크 9시간) 가는 방법이 유일하다. 사탕수수 즙이나 당밀 등의 제당공정 부산물을 발효·증류·숙성시켜 만든 증류주. 서양을 대표하는 저렴한 술로, 쿠바의 화이트럼인 바카디 럼, 또는 하바나클럽 등 이미지가 짙다. 저렴하면서 강렬한 술이라서, 험난한 바다를 돌아다니는 선원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실제로 18세기 범선 항해에서는 상비품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유는 항해를 오랫동안 하다보면 물이 썩기 때문에, 술로 보관하여 부패를 방지하고 마실 때는 물과 함께 희석하여 마시기도 했다.
rum 마르티니크 럼주
조세핀의 출생지 마르테니크섬
martinique 마르티니크 기념관 안 세 cañete 조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조제핀의 죽음을 듣고 말한다.
" 단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소. 단 하룻밤도 그대를 내 팔에 끌어안지 않은 적이 없소. 어떤 여인도 그대만큼 큰 헌신과 열정, 자상함으로 사랑하지 않았소. 공감과 사랑, 진정한 감정으로 묶인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오."
죠세핀은 1763년에 태어났고 원래 이름은 Marie Josèphe Rose Tascher de la pagerie 이며 마르티니크 섬의 부자의 딸로 태어났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 배경이 된 마르티니크섬!
martinique-마르티니크섬, 다이아몬드 바위
"Why, Am, I, Here?"
떠듬떠듬 발음이 어눌하다. 이 여인은 왜 여기에 있는가, 영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짐을 옮겨다 주는 단순한 조건의 여행에 따르는 경비를 받는 여행은 마약으로 관련되며 우리나라의 한 가정주부는 프랑스 파리 감옥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이송된다. 낯선 땅의 어두침침한 감옥에서의 생활은 가혹하다 못해 처참하기 그지없다.
"악몽일 거야. 이건 정말 악몽이야." 악몽에서 깨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던 중 이 사건은 우연찮게 언론에서 취재를 나오고 사연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모든 삶이 망가지면서 처참하게 버티던 남편은 취재진의 도움으로 결국 아내를 만나러 간다. 알고보니 이섬이 나중에 꼭 여행가자고 아내와 약속했던 카리브해에 있는 섬이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걷고 있는 이 푸르고 넓은 바닷가가 오래전 남편과 약속했던 그 카리브해안이란 것을 깨닫고, 둘은 아무 말 없이 걷는다. 지금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집으로 가는 것이다.
이 섬의 이름은 마르티니크, 별칭은 꽃의 섬이라고 한다. 그녀가 갇혀있던 섬이다.
태양에 대한 열망 있는 마르티니크 풍경,
폴 고갱 Paul Gauguin 마르티니크 풍경 (출처: 구글)
고갱은 생활고를 극복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자 마르티니크 섬에 약 5개월간 머문다. 하지만 그는 이곳 생활에 만족 했지만 건강 때문에 오래 버티지는 못하고 파리로 돌아온다. 그는 이 여행에서 12점의 작품을 가지고 돌아온다. 아직 그의 방법과 세계는 융합되어 있지는 않은 시기였기도 하였 지만, 그 중 4장은 뛰어난 인물화로 인정되기도 한다. 마르니티크 섬에서의 작품들에는 지난날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던 산뜻한 색채와 자연의 노래가 넘치고 있다.
빅토르쉘세르 Victor schoelcher, 카리브 해 노예제도가 끝나다.
마르티니크섬에 설치된, 빅토르 쇨세르(Victor Schoelch) 동상
사탕수수의 황금시대가 지나고 프랑스 본토에 사탕무가 헐값에 도입되기 시작, 사탕수수가 과잉 공급되면서 거만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많이 잃게 되면서 당시 프랑스 내각에 있던 빅토르 쇨세르(Victor Schoelcher)가 주도하는 노예폐지 운동이 힘을 얻게 된다. 해외 속령에 대해 책임을 맡고 있던 장관 빅토르 쇨세르는 임시정부가 1848년 노예해방 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설득하게 된다. 그 결과 프랑스령 서인도제도에서 노예제도가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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