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반찬 두부그리고 도봉산 두부마을, 도봉 평화문화진지 가벼운 여행



    서울 도봉산



    역사와 함께한 좋은 반찬 두부

     

    고려 말 이색(李穡)의 문집인 목은집두부와 관련하여 대사구두부내향이라는 시조 가 있는데, 

     

    나물국 오래 먹어 맛을 못 느껴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 주네이 없는 이, 먹기 좋고 늙은 몸 양생에 더없이 알맞다. “ 두부를 표현했다.

     

    조선시대에는 허균의 도문대작에서는


    서울 창의문 (자하문) 밖 사람이 두부를 잘 만들며 그 연하고 매끄러운 맛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묘사되었고, 



    < 추사의 제자인 소치의 생가, 화실인 전남 진도 운림산방에 주련으로 제작된 현판>

     

    우리에게 <세한도>의 까칠한 먹자국과 군더더기 없는 붓질을 남겨준 추사 김정희는


     "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 "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 손자

     

    이것은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 된다.

    비록 허리춤에 말만큼 큰 황금도장을 차고,

    먹는 것이 사방 한 길이나 차려지고

    시중드는 사람이 수백명 있다 해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행농을 위해 쓴다. 칠십일과 -

     

    칠십 평생 굴곡 많은 삶을 살아오면서 진정 즐거운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작품으로 185671(철종 7) (大烹豆腐瓜董菜 高會夫妻兒女孫)글씨를 후세에 남기고, 돌아가기 3일전에 봉은사 장경을 보관한곳에 <판전(版殿)> 을 쓰고 1010일 추사는 별세 한다.

     

     


    도봉산 손 두부마을

     

    산과 두부가 주는 건강한 마을 도봉산 손 두부골목 !

    지하철 1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도봉산역에 내리면 도심을 벗어낫다는 의식 때문인지 상쾌한 공기가 역에서부터 느껴진다. 덩달아 상쾌해진 기분을 안고 수많은 등산객들은 누구의 안내도 필요 없이 1번 출구로 나서게 된다. 멀리보이는 도봉산이 눈에 들어오는가 싶다가 이내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가 지각활동을 활발하게 한다.

     

    도봉산역에서부터 도봉산 입구까지의 거리는 등산객들을 유혹하는 각종 음식점들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도봉산 등산 생각 없이 오직 이것만을 먹기 위하여 방문한 이들에게는 주저하지 않고 골목으로 향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바로 두부이다. 두부를 찾는 이들에게는 도봉산은 단지 두부를 맛있게 먹기 위한 자연이 만들어 놓은 병풍 같은 존재라 한다면 너무 과한 표현 일까? 그만큼 손두부를 먹기 위해 등산 생각 없이 도봉산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고 한다.



     

    도봉산 매표소를 향해 걷다보면 양 갈래 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두부 식당들이 보인다. 이곳이 두부 골목이다. 식당마다 마당에 두부 만드는 도구들이 보인다. 식당에 들어가면 두부를 이용한 여러 요리들 두부김치, 콩 비지, 두부전골이나 두부보쌈 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메뉴를 선택하든 평상시 먹었던 두부와는 다른 맛과 느낌이 전해지는 도봉산 입구 두부마을 이다. 추워지기 전에 도봉산에 방문하여 맑은 공기도 마시고, 가벼운 산행과, 몸에 좋은 두부 요리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 평화문화진지에 전시된, 1989년에 냉전 시대와 공산주의의 종말을 고했다는, 독일 베를린장벽 >

     

    평화문화진지, 대전차방호시설은 조선시대 다락원터!

     

    서울의 북쪽 끝, 도봉구에 대결과 분단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흉물처럼 방치되었던 대전차방호시설이 평화와 문화의 바램을 담은 문화창작공간, 평화문화진지에 들려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홈페이지 : http://culturebunker.or.kr/ (서울 도봉구 마들로 932)

     

    누원(樓院)은 우리말로 다락원,


    다락 ( 樓) 으로 된 원집 (院)이 있어 붙은 이름으로, 당초에는 대전차방호시설이 들어선 자리는 조선시대 다락원이 있었던 곳이다. ()은 나랏일로 여행하는 관리들이 쉬거나 잠을 잘 수 있던 공공 숙박시설 용도라 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은 19506.25 전쟁 시작 후, 북한군 탱크메인통로로 활용되는 곳으로 이후 북한군의 재침에 대비해 이곳 마들로 932 일대에 대전차방호시설을 지었다.

    도봉구 최초의 시민아파트겸 대전차방호시설은 노후화 인해 2004년 안전진단 E등급을 받아 철거되었고, 군사시설에 해당하는 1층은 군사시설로 존치되었다. 이후 10년 이상 방치된 대전차방호시설은 도시의 미관을 저해하는 흉물로 전락했었다.

     

    대결과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와 창조의 공간으로 20147월 민간과 행정의 협력을 통해 공간재생이 이루어졌고, 201612월 서울시, 도봉구청, 관할 군부대 협약하여 대전차방호시설의 흔적들을 그대로 보존한 채 평화문화진지는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114일까지 평화문화진지개관 1주년 기념행사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평화문화진지,  1호선 도봉산역 3번 출구 / 7호선 도봉산역 2번 출구, 09번 도봉산역 버스 하차 방면으로 (도보 2)

     

    Posted by Buna voyager